[Visual Art]
⦁ Artist.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 Location. 독일 베를린 바이센부르거 슈트라세 25번지
berlin Germany
큐베이터 지율’s Statement
모든 예술가가 좋은 작업 공간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여러 개인적 혹은 시대적 이유로 인해 힘겹게 작업 공간을 만들고 유지해 나아가야 했던 예술가가 더 많을 것입니다. 케테 콜비츠는 세계 대전 시기에 결혼과 임신에도 철저히 작업을 이어나갔던 아티스트입니다. 그녀만의 필체가 새겨진 판화 작업은 대중에게 소외와 폭력으로 얼룩진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러한 세상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1891년에 칼 콜비츠 의학박사와 결혼하면서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뵈르터 플라츠 근처 바이센부르거 슈트라세 25번지 모퉁이 건물 2층 절반을 임대해 거주하였습니다. 그곳은 “피아노 노빌레(piano nobile)”로서 높은 천장과 널찍한 공간이 있는, 당시 임대 주택중 가장 좋은 곳이었습니다. 거리 쪽으로 난 방 4개 중에서 2개는 병원 진료실로 사용했습니다. 아래층에 케테의 시누이인 리스베트 콜비츠가 살았는데, 케테는 교사인 시누이가 일하는 시간 동안 그녀의 원룸을 멀티큐브로 사용하였습니다.
아티스트 소개
케테 콜비츠(1876. 07. 08 ~ 1945. 04. 22)는 예술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랐던 독일 대표 판화가입니다.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비극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주제의 작품을 해왔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며 혐오와 폭력에 관하여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습니다.
‘현실의 최전선’ 멀티큐브 이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결혼 후 몇 년 동안은 베를린에서 멀티큐브를 임대할 돈이 충분하지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고려에서 한동안 시누이의 방을 멀티큐브로 썼습니다. 경제적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직면한 셈입니다. 또한, 이 지역은 부르주아 지역에서 노동자 지역으로 변모한 곳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발코니와 과도하게 장식이 부착된 높은 건물들 뒤로는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 건물들이 있었습니다. 가난의 세계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함께 살았으니, 이곳은 여러모로 ‘현실의 최전선’이었습니다.
현실의 최전선 멀티큐브에서 탄생한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죽음, <직조공 봉기> 연작 중 두 번째, 1893-97, 석판화.
<직조공들>이라는 연극을 소재로 삼아서 6점의 연작 판화를 제작했습니다. ‘빈곤, 죽음, 회의, 행진, 봉기, 결말’이라는 6단계로 노동자의 비참함과 처지 개선을 위한 그들의 투쟁을 표현했습니다.
부모, <전쟁> 연작 중 세 번째, 1922, 목판화
전쟁에서 둘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아들이 죽은 뒤 10년이 지나서야 일곱 개의 목판화로 구성된 <전쟁> 연작을 완성했습니다. 전쟁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며 고통과 절망의 떨림을 표현했습니다.
이 공간을 멀티큐브로 정하게 된 계기 혹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곳은 일종의 로빈스 크루소가 살았던 섬처럼 자유로웠던 뮌헨의 튀르켄슈트라세 작업공간, 그리고 저의 첫 멀티큐브인 독일 쾨니히스베르크(現 칼리닌그라드)과 매우 다른 공간입니다. 1891년 남편 칼 콜비츠와 결혼하면서 베를린으로 오게 되었으며, 결혼 후 몇 년 동안은 베를린에서 멀티큐브를 임대할 돈이 충분하지 않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시누이의 방을 멀티큐브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1912년 조각을 위한 멀티큐브를 구하기 전까지, 저는 이 공간을 통해 미술을 향한 의지를 더욱 공고히 다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결혼과 임신으로 미술가로서 삶이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누이의 원룸을 빌려 그곳을 멀티큐브로 삼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찍었습니다. 남편의 환자들을 돌보고, 아이도 키우고, 멀티큐브 주변 여러 사람을 관찰하면서 저는 여성으로서, 화가로서, 그리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성장했습니다. 제 생애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참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젊다는 것을 이곳에서 깨달았습니다.
멀티큐브에서의 루틴은 어떻게 되시나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일터에 나가면, 저는 아래층 시누이의 방이자 저의 멀티큐브로 갑니다. 교사인 시누이는 보통 9시에서 12시 사이에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기에 그 시간이 저에게는 작업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시누이가 돌아오면 저는 작업을 위한 여러 준비 시간을 가집니다.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면, “제가 그린 스케치들을 쭉 살펴보며 제 초기작품들을 감당해냅니다. 과거 작품들을 다시 보는 건 꽤 힘이 드는 일입니다. 때때로 저는 시체를 보러 시체 공시소를 가기도 합니다. 원래 시체는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저에게는 보여줍니다. 시체는 언제나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릅니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끔찍합니다. 아이들과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잠시 작업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아내로서 역할을 다합니다.
What’s in My Multicube?
1. 목탄 _ 판화를 진행하기 전, 에스키스를 위해 목탄을 자주 이용합니다. 목탄은 제가 원하는 거칠고 격양된 느낌을 표현하기 아주 적절한 재료입니다.
2. 피터가 침대에서 읽다 _ 둘째 아들이 죽은 후, 저는 아들을 그린 드로잉을 액자에 보관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세 가지가 중요한데, 그것은 제가 자녀를 가졌다는 것, 인생에서 그토록 충실한 동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업을 안 하실 때 멀티큐브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어떤 글이든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읽는 행위의 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쉴 때, 슈테어의 『삼일 밤』(1909)나 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짧은 이야기들 등 여러 책을 읽습니다. 가끔씩 제 맘에 쏙 드는 아주 감각적인 언어를 발견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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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최전선 멀티큐브 (Feat. 아티스트 케테 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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