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동굴 멀티큐브 | Feat. 알베르토 자코메티

[Visual Art]
⦁ Artist. 알베르토 자코메티
⦁ Location : Paris, France

큐베이터 지율’s Statement

나아갈 길을 확신할 수 없는 20대의 삶을 살아가며 방황하는 저에게 자코메티의 작품은 그 자체로 응원이자 위로였습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고 말했던 자코메티의 멀티큐브와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아티스트 소개

알베르토 자코메티(Giovanni Giacometti, 1901-1966)는 스위스 출신 조각가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조반니 자코메티의 아들입니다. 가늘고 길게 만든 사람 형태의 몸 조각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각가로서 높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앙상한 동굴’ 멀티큐브 이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작고 낡은 황폐한 공간이지만, 이곳에 다정하게 ‘동굴(cave)’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작다고 생각했지만, 오래 머물수록 멀티큐브는 점차 커졌습니다.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며, 많은 예술가 친구들이 멀티큐브를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앙상한 영혼의 조각상을 만들며 전설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앙상한 동굴 멀티큐브에서 탄생한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The Forest : Composition with Seven Figures and a Head (1950)

값비싼 집도, 멋진 옷도 다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살아가는 동안 인간 그 자체에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겉치레의 모든 장식과 살, 근육을 걷어내고 가늘고 긴 골격만을 지닌 고독한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Walking man 1 (1960)

인간이 걸어 다닐 때면 자신의 몸무게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습니다. 내가 보여주려는 것은 바로 그 가벼움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걸어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공간을 멀티큐브로 정하게 된 계기 혹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1921년 기차 여행 중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하기로 약속하자마자 하루도 안 되어 노인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사물이 되어버렸고, 저는 삶의 본질을 포장하는 장식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파리로 와 아주 작은 7평 정도의 공간에 멀티큐브를 마련하였고, 이곳에서 평생 인간의 영혼과 본질을 파악하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멀티큐브에서의 루틴은 어떻게 되시나요?

묘지를 산책하고 멀티큐브로 돌아와 에스프레소 두 잔을 마신 뒤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아 부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저는 평소 다시 태어나면 삶에 중요한 부분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고 생각하며, 사람이 딱 한 번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항상 아쉬워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각들을 자주 부수면서 매일매일 죽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What’s in My Greycube?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관련된 이미지를 모아 작품을 제작하는데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1961년 사무엘 베케트는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재공연을 준비하며 친구인 저에게 무대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덩그러니 놓아둔 채 무대를 구성했는데, 그린 나무가 저보다 훨씬 컸기에 사다리가 필요했습니다.